[경남시론] 상처 입은 마음에 생명의 숲을… 경남자살예방협회21년의 동행

김종임(마음숲가족상담교육연구소 소장· 경남자살예방협회 이사)

 

  매년9월10일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생명의 존엄함을 일깨우고 전 세계적인 비극에 공동으로 맞서기 위해2003년 제정한'세계 자살예방의 날'이다. 매년 맞이하는 날이지만,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내담자들의 지친 어깨와 눈물을 마주할 때마다 이 날이 주는 무게감은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

마음숲가족상담교육연구소 김종임 소장 / 경남자살예방협회 이사

  상담실 현장에서 만나는 위태로운 청소년들과 부모들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깊은 침묵과 소통의 단절이 자리 잡고 있다. "아이와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아요"라며 가슴을 치는 부모, "누구도 내 고통을 진심으로 묻지 않아요"라며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근 아이들의 절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가족 상담의 관점에서 볼 때, 극단적인 선택의 충동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는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다. 가장 따뜻한 안식처여야 할 가정과 인간관계라는 숲에서 숨통이 막히고 길을 잃었을 때, 아이들이 세상에 보내는 마지막이자 가장 절박한'구조 신호(SOS)'다.

 

  공식 통계 지표는 이러한 위기 상황을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다. 최근 성평등가족부가 발표한'2026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10대 청소년의 사망 원인1위는14년째 변함없이 자살로 나타났다. 더욱이 전체10대 사망자 중 자살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48.2%에 달하며, 청소년4명 중1명(26%)은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의 우울감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경남의 현실 역시 절박하다. 경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의 자살사망자 분석 자료에 따르면 도내 자살 동기 중 정신과적 어려움이28.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국립정신건강센터 등의 정신건강 지표를 살펴보면 경남도민1인당 지역사회 정신건강 예산은 전국17개 시·도 가운데 최하위인6,944원에 머물러 있어, 취약한 공공 안전망의 그늘 속에서 위기 청소년과 가족들이 소리 없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 메마른 땅에 생명의 물을 길어 올리고자 경남자살예방협회가 첫걸음을 내디딘 것은 지금으로부터21년 전인2005년3월14일이었다. 협회 창립 당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하루 평균36명, 1시간에1.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OECD 국가 중 자살사망률4위이자 노인을 포함한 자살증가율1위'라는 참담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당시 경남 도내에는 이를 전담할 전문적 예방 기구조차 없었기에, 1992년부터'희망의 전화'를 운영해 온 마산종합사회복지관의 상담 경험을 모태 삼아 지역의 의료계, 법조계, 교육계, 시민사회가 오직 생명을 살리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뭉쳤다. 비영리 민간단체로서 겪어야 했던 재정적 빈곤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전문상담가들이365일 전화기를 붙들고 위기에 처한 이들의 곁을 지켜온 지 어느덧21년의 세월이 흘렀다.

 

  오늘날은 다행스럽게도 공공 광역·기초 자살예방센터와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수많은 기관과 단체들이 자살예방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공공 인프라가 든든하게 확장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그 이면에서 오랜 시간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순수 비영리 민간단체인 경남자살예방협회의 존재감은 다소 무뎌지거나 잊힌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지 않는 비영리 단체로서 감당해야 하는 재정적 한계와 운영상의 어려움은 매 순간 무거운 과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협회의 생명 불씨가 꺼지지 않은 까닭은, "단 한 사람의 생명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협회 이사진들의 뜨거운 사명감과 자발적인 동행 덕분이었다. 임상 현장에서 마주하듯, 행정 절차나 진료 기록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공공 기관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위기 가족들이 여전히 많다. 제도권 행정이 미처 보듬지 못하는 그늘진 사각지대에 가장 먼저 다가가 온기를 전하는 완충지대 역할, 그것이 바로 우리 협회 이사진과 활동가들이21년간 지켜온 비영리 생명운동의 본질적인 가치다.

 

  2026년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경남자살예방협회는21년 역사의 단단한 뿌리 위에서 새로운 희망의 싹을 틔우고자 한다. 그 첫걸음이 바로 김형준 회장을 필두로 협회 이사진이 기획부터 실행까지 뜻과 힘을 모아 준비한 ‘2026 청소년 생명존중 토크 콘서트’다.

 

  이번 토크 콘서트는 교단 위에서 내려다보는 딱딱한 주입식 훈계가 아니다. 청소년들의 상처 입은 마음에 가닿는 따뜻한 음악과 진솔한 스토리텔링, 그리고 경남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KCSI)팀장이자 본 협회 이사로 헌신하고 있는 김정학 경감이 강사로 나서 "KCSI는 알고 있다? 데이터로 풀어보는 청소년 마음의 신호"라는 특별한 토크로 함께하는 쌍방향 공감의 장이다. 가정 안에서 억눌렸던 상처와 고통을 털어놓고, "너의 아픔은 너만의 탓이 아니야", "있는 그대로의 너는 참 소중하단다"라는 회복과 화해의 언어를 건네는 자리다. 굳게 닫힌 청소년들의 마음의 빗장을 열고, 가정과 이웃이 다시 이어지는 치유의 숲을 문화라는 통로를 통해 일구어내고자 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듯, 위태로운 한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가족이라는 따뜻한 품과 지역사회의 촘촘한 관심이 맞닿아야 한다. 비영리단체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21년간 묵묵히 경남의 생명안전망을 지켜온 경남자살예방협회가 청소년과 위기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지속 발전할 수 있도록, 도민 여러분의 애정 어린 관심과 지속적인 연대가 절실하다.

 

  생명을 돌보고 회복하는 일에는 결코 쉼표나 마침표가 있을 수 없다. 청소년 생명존중 토크 콘서트를 도약대로 삼아 협회가 도내 아이들에게 건강한 생명의 숲을 선물할 수 있도록, 경남의 성숙한 생명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이 여정에 도민 모두가 다정한 동행자가 되어 주시기를 마음 깊이 소망한다.

 

작성 2026.09.10 09:12 수정 2026.09.1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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