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부추꽃 필 무렵이다. 8월 말부터 9월 초 사이에 부추밭에는 하얀 꽃이 일제히 피어난다. 파란 하늘에 새하얀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면 땅에서도 순백의 부추꽃이 맞장구를 친다. 부추꽃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작은 꽃들이 둥글게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밤하늘의 별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 것 같다.
부추는 지역에 따라 이름도 참 다양하다. 경남 동부지역에서는 ‘정구지’라고 하고 서부지역에서는 ‘소풀’이라고 한다. 전라도에서는 ‘솔’이라고 하며, 충청도에서는 ‘졸’이나 ‘쫄’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변형된 이름들이 넓게 분포하는 것도 흥미롭다.
‘소풀’은 ‘솔풀’이 변한 말이라는 견해가 있다. 부추 잎이 소나무 잎처럼 가늘고 길게 생겼기 때문에 솔풀이라 부르다가 소풀로 변했다는 설명이다. 소가 좋아해서 소풀이라는 말도 있지만, 소가 부추를 즐겨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는 못했다.
‘정구지’의 어원도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정월부터 구월까지 먹을 수 있는 풀이라는 설도 있고, 전을 부쳐 먹는 데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민간에서는 정력에 좋은 채소라는 뜻에서 정구지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말도 있다. 무엇을 세운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제주도에서는 부추를 ‘세우리’라고 한다니 대충 짐작은 간다.
경남 서부지방에서 말하는 ‘소풀찌짐’은 부추전의 방언이다. 소풀에 방아잎과 매운 고추를 조금 썰어 넣고 전을 부치면 막걸리 안주로 그만이다. 소풀을 살짝 데쳐 나물로 무쳐 먹어도 좋고, 생으로 숭숭 썰어 초고추장에 비벼 먹어도 맛이 좋다.
소풀은 음식으로만 먹은 것이 아니다. 예로부터 약용으로도 이용해 왔다. 특히 위나 장에 탈이 나 설사를 할 때 소풀이 좋다는 민간요법이 전해온다. 밥에 고추장과 소풀을 넣고 비벼 먹으면 설사가 멎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치료법이라기보다는 오랜 세월 농촌에서 경험으로 전해온 생활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소풀은 봄에 대지를 뚫고 처음 올라오는 어린잎을 귀하게 여겼다. 시집간 딸에게 잘해주라는 뜻인지, 사위가 찾아오면 장모는 씨암탉을 잡아 백숙을 하고 소풀찌짐을 부쳐 내놓았다. 그런데 장인어른은 야박했다. “남 줄 것 없다”며 소풀을 먼저 베어 먹어버리고 장모를 밤새 괴롭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소풀 하나에도 사위와 장모, 장인어른 사이의 옛 농촌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풀은 한 번 심어 놓으면 해마다 그 자리에서 돋아나는 다년생 풀이다. 생명력이 질겨 웬만해서는 죽지 않는다. 봄부터 가을까지 보름에 한 번쯤 베어 먹어도 새싹이 계속 올라온다. 거름을 많이 주지 않아도 잘 자란다. 그래서 산과 들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소풀도 있다. 잡초 속에 있을 때는 구별하기 어렵지만 꽃대가 올라오고 하얀 꽃이 무리 지어 피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인간이 오랜 세월 직접 길러 먹으면서 맛과 쓰임을 검증해온 채소는 그리 많지 않다. 그중에서도 소풀은 특별하다. 봄에는 땅을 뚫고 가장 먼저 올라와 밥상을 채워주고, 여름 내내 베어 먹어도 다시 자란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하얀 꽃을 피워 눈까지 즐겁게 한다. 먹기만 좋은 것이 아니라 꽃까지 아름다운 것이다. 이른 봄의 여린 소풀도 좋지만 꽃 필 무렵의 가을 소풀도 맛이 일품이다. 올가을에는 하얀 소풀꽃을 바라보면서 소풀찌짐 한 접시에 막걸리 한 사발을 곁들여보면 어떨까.
[이봉수 논설주간]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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