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박동명] AI가 바꾸는 의정활동, 감시·예산·조례의 품질을 높인다

▲박동명/한국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

필자 박동명 교수는 지방의회 의원과 의회 직원을 대상으로 인공지능(AI) 특강을 지속해 오고 있다. 강의 주제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행정사무감사기법, 예산안·결산 심사요령, 조례 입법 및 심사 등 의정활동 핵심 영역 전반이다. 필자는 인공지능을 단순 문서 작성 도구가 아니라, 의회의 견제·감시 기능을 강화하고 주민에게 설명 가능한 성과로 환류시키는 의정 인프라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현장 실습 중심의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더 이상 특정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닌, 국민 누구나 일상과 업무에서 활용하는 기초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사회가 선택해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인공지능을 도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기준과 철학 아래,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인공지능 활용 기회를 보장할 것인가”이다. 이 선택에 따라 한국의 경쟁력과 민주주의의 질, 노동의 미래가 동시에 달라진다.

 

문학·창작 영역을 넘어선 인공지능의 확장


인공지능은 흔히 ‘정답이 있는 업무’에 강하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의 흐름은 그 경계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한국문학번역원이 진행한 고전 번역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다수의 평가자가 인간 번역보다 챗GPT 번역을 더 높게 평가했다는 보도는 상징적이다. 이는 문학 번역이라는 고도의 창작·해석 영역에서도 인공지능이 보조 수준을 넘어 일정 부분 경쟁 가능한 품질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

 

소설가 황석영이 장편 집필 과정에서 챗GPT를 서사 구조 점검과 아이디어 확장에 활용했다고 밝힌 언급 또한 같은 맥락이다. 핵심은 대체가 아니라 협업이다. 즉 인공지능은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 존재가 아니라, 창작자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지적 증폭기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일터를 바꾸는 인공지능 활용의 일상화


일터에서는 변화가 더 빠르다. 대한상공회의소 산하 연구기관 조사에 따르면, 임금근로자의 약 56%가 생성형 인공지능을 업무에 활용하고 있으며, 인공지능을 쓰지 않았다면 주당 평균 약 8시간 안팎을 추가 근무해야 했을 것이라는 응답이 제시되었다. 결과적으로 업무시간이 유의미하게 절감되었다는 분석이다.

 

또한 국내외 조사에서는 한국 조직의 생성형 인공지능 사용 비중이 높고, 상당수가 직원 생산성 향상을 체감하고 있다는 흐름이 반복해서 제시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조직 운영과 업무 프로세스 자체가 ‘인공지능을 전제한 구조’로 이동하고 있음을 뜻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있다. 생산성 향상은 인공지능을 쓰는 개인의 능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조직이 데이터를 정리하고, 문서를 구조화하며, 책임과 보안을 어떻게 설계했는가가 성패를 가른다. 인공지능은 도구이지만, 도구가 성과로 연결되려면 경영(프로세스), 행정(책임·통제), 법(권리·의무)의 3박자가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

 

인공지능 활용 격차가 곧 경쟁력 격차가 되는 시대


방송통신위원회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2024년 지능정보사회 이용자 패널조사’ 보도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24.0%가 생성형 인공지능 이용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유료 구독 경험도 크게 늘었다. 이용 형태도 텍스트 생성 중심에서 음성·음악, 이미지 등으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같은 자료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비이용 이유이다. “높은 지식수준이 필요해 어렵다”, “개인정보 유출이 우려된다”, “복잡하다”가 상위에 위치한다. 이는 인공지능 격차가 단지 기기 보유 여부가 아니라 문해력, 신뢰(보안·개인정보), 사용성(교육·도구 설계)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 지점에서 인공지능 격차는 곧 조직 내 영향력의 격차로 번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을 쓰는 구성원은 더 빨리 조사하고, 더 명확히 요약하고, 더 설득력 있게 보고서를 만든다. 반대로 인공지능을 쓰지 못하는 구성원은 같은 시간을 들이고도 같은 결과물을 내기 어렵다. 결국 성과·평가·승진·고용 안정의 구조까지 인공지능 활용 역량과 연동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지방의회 현장에서 확인되는 인공지능의 진짜 가치


필자가 지방의회 의원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며 반복해서 확인하는 결론은 명확하다. 의정활동에서 인공지능의 가치는 글을 대신 써주는 기능이 아니라, 정책감사·예산심사·조례입법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검증 장치라는 점이다.

 

행정사무감사에서는 방대한 자료를 요약하고, 쟁점을 분해하고, 부서별 책임 구조를 재구성하여 질문서의 논리를 강화하는 데 인공지능이 유효하다. 예산안·결산 심사에서는 항목 간 비정상 증감, 유사 사업 중복, 성과지표 불일치 등을 빠르게 찾고, “왜 이 예산이 필요한가”를 정책 목적·집행 수단·성과지표로 연결해 검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조례입법에서는 상위법 체계와 용어 정합성, 유사 조례 비교, 조문 구조 점검을 통해 ‘그럴듯한 문장’이 아니라 집행 가능한 규범으로 다듬는 데 기여한다. 결국 인공지능은 의회의 본령인 견제·감시와 대안 제시를 더 정밀하게 수행하도록 돕는 도구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일부 유능한 의원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의회 전체의 운영 체계를 바꾸는 과제이다.

 

한국 사회의 인공지능 활용·발전 전략


인공지능 활용 확산이 곧바로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인공지능 시대의 선도국가를 지향한다면, 최소한 다음 네 가지 전략을 국가·지방 차원에서 함께 추진해야 한다.

 

첫째, 전 국민 인공지능 문해력 교육을 국가전략으로 격상해야 한다.

인공지능 문해력은 프롬프트를 잘 쓰는 요령만이 아니다. 결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능력, 오류와 환각을 가려내는 능력, 저작권·개인정보·보안에 대한 기본 이해가 포함된다. 유네스코가 제시한 학생·교사용 인공지능 역량 프레임워크는 교육과정에 인공지능 학습 목표를 통합하는 방향을 구체화하고 있다. 초·중등 교육에서 ‘인공지능 시민교육’을 제도화하고, 직장인·공무원·지방의회 대상 재교육으로 세대·직종 간 격차를 줄여야 한다.

 

둘째, 공공부문이 인공지능 활용의 모범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회의록, 정책자료 요약, 민원 분석, 예산·감사 데이터 분석 등은 이미 인공지능 적용 효과가 큰 영역이다. 다만 공공부문은 편리함보다 책임과 신뢰가 먼저다. 표준 지침, 보안 기준, 책임 체계(누가 검토하고 누가 승인하는가)를 갖춘 뒤, 업무에 적용해야 한다. 특히 지방의회는 집행부 견제기관이므로, 인공지능을 홍보 콘텐츠 생산에만 쓰는 순간 오히려 신뢰를 잃는다. 감사·예산·조례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도록, 의회 업무 체계를 인공지능 친화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셋째, 규제의 불확실성을 줄이되 윤리·인권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인공지능이 인권·민주적 가치·법치주의를 존중하며 신뢰할 수 있게 설계·운영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해 왔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의 인공지능 위험관리 프레임워크 역시 인공지능을 단순한 기술 시스템이 아니라 사회기술적 시스템으로 보고, 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접근을 강조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2026년 1월 시행에 들어간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은 국가 차원의 인공지능 진흥과 신뢰 기반 조성을 제도화하는 흐름을 보여 준다. 핵심은 규제 완화와 규제 강화의 이분법이 아니다. 불확실성은 줄이고, 책임성은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제도를 정교화해야 한다.

 

넷째, 지역·계층을 아우르는 포용적 인공지능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인공지능 이용 경험은 늘고 있지만, ‘어렵다·불안하다·복잡하다’는 이유도 여전히 강하게 존재한다. 이는 지역·연령·소득에 따라 활용 격차가 구조화될 가능성을 뜻한다. 지방 중소도시와 농산어촌, 영세 자영업자,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공공 인공지능 서비스와 교육 프로그램을 확충하지 않으면, 인공지능 격차는 곧 새로운 사회적 불평등으로 굳어진다.

 

인공지능 네이티브 사회로 가는 한국형 모델을 만들 때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추진한 인공지능 법(EU AI 법안)은 위험 기반 규제 접근을 제도화하며, 세계 각국이 혁신과 신뢰를 어떻게 균형 잡을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한국도 이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인공지능의 확산은 이미 현실이고, 되돌릴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사회가 그 확산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다.

 

필자가 지방의회 현장에서 강조하는 원칙은 단순하다. 인공지능을 쓰면 속도는 빨라진다. 그러나 신뢰를 담보하는 구조가 없으면, 빠른 속도는 곧 빠른 실패로 이어진다. 의회가 인공지능을 도입한다면, ‘그럴듯한 문장 생산’이 아니라 근거·데이터·책임·환류를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래야 주민에게 설명 가능한 의정성과가 만들어지고, 민주주의의 품질도 함께 올라간다.

 

이제 한국은 ‘인공지능을 도입한 사회’를 넘어, 인공지능을 잘 쓰는 사회, 더 나아가 사람 중심의 인공지능 네이티브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교육·산업·행정·지방자치 전반에서 기준과 철학을 분명히 세우고, 법·제도·윤리·역량을 통합한 전략을 실행할 때, 한국은 기술 수용국이 아니라 인공지능 거버넌스 선도 모델로 도약할 수 있다.



박동명

▷법학박사,  한국정책연구원 원장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전)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



작성 2026.02.03 12:03 수정 2026.02.05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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