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 개념은 『시학』에서 예술의 본질과 인간 감정의 작용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제시한다. 이상옥은 『디카시와 철학』에서 이 미메시스 개념을 현대 디지털 환경, 특히 디카시라는 장르를 통해 재해석하려 시도한다. 그는 플라톤과 대비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플라톤이 미메시스를 ‘이데아의 그림자’로 본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미메시스는 단순 복제가 아니라, 질료 속에서 형상을 찾아내어 새로운 질서로 재구성하는 창조 행위다”(23쪽). 이 진술은 미메시스를 모방 이상의 창조 행위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이상옥은 이러한 미메시스 이해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직접 연결한다. 그는 “질료는 잠재성이고, 형상은 실현된 가능성이다.”(23쪽)라고 서술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론은 형상과 질료의 결합에서 형상적 미메시스로, 그리고 카타르시스라는 흐름으로 이어진다.”(24쪽)고 주장한다. 여기서 미메시스는 단순한 재현 행위가 아닌 질료와 형상의 결합 과정 속에서 본질을 드러내는 인식 행위로 확장한다.
그러나 『시학』에서 미메시스는 존재론적 결합을 ‘경험’하는 행위로 규정하지 않았다. 미메시스는 인간이 ‘행동하는 인간의 삶’을 모방하는 예술적 활동이다. 형이상학적 질료와 형상 이론은 그 자체로 미메시스의 정의를 구성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상옥의 설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재구성한 해석이지, 원전적 정의의 반복은 아니다.
이상옥은 미메시스의 효과를 카타르시스 개념과 결부한다. 그는 “미메시스가 형상을 드러내고, 그 형상은 관객의 내면에서 정서적·지적 변화를 이끌어 카타르시스에 이른다.”(24쪽)고 말한다. 카타르시스는 “단순한 감정 해소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와 운명, 도덕적 질서에 대한 통찰을 동반한다.”(24쪽)고 설명한다. 이 설명은 『시학』의 일반적 해석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 구조가 디카시 이론으로 옮겨지는 방식에 있다.
이상옥은 디카시를 “스마트폰의 내장 디카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발생하는 순간적 시적 형상(날시)을 포착하고, 짧은 시적 언술로 표현해 사진 기호와 문자 기호로 이루어진 멀티텍스트를 창조하는 새로운 장르”(24쪽)로 정의한다. 이때 미메시스는 극적 재현과 관객의 감정 경험이라는 전통적 구조를 벗어나, 시각적 포착과 기호 결합의 과정으로 재배치한다. 디카시는 미메시스를 수행하는 예술 장르로 제시하지만, 카타르시스가 어떤 방식으로 발생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설명은 상대적으로 약화한다.
이상옥 이론에서 핵심 개념으로 등장하는 것은 ‘날시’이다. 그는 날시를 “사진 기호와 문자 기호로 가시화되기 이전, 세계와 시인의 감각이 직접 맞닿는 원초적 지점”(25쪽)으로 규정한다. 또한, “시인은 풍경, 사물, 사건 속에서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그 안의 의미를 포착한다.”(25쪽)고 말한다. 이 구절에서 미메시스의 주체는 분명히 시인이다. 미메시스는 인간의 감각과 직관을 통해 세계의 의미를 포착하는 행위로 이해한다.
이어지는 설명에서는 기술 매체의 역할이 전면에 등장한다. 이상옥은 “시인은 감각과 직관으로 포착한 형상을 스마트폰 내장 디카로 찍으면서 구체화한다”(26쪽)고 서술한다. 이때의 질료를 “이미 시인의 의식이 개입된 선택된 질료”(26쪽)로 규정한다. 여기서 미메시스를 인간 주체의 인식 행위와 기계적 포착 과정의 결합 형태로 제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미메시스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수행하는 행위이다. 도구는 그 자체로 미메시스를 수행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술 매체가 미메시스 과정의 핵심 계기로 서술되는 지점에서 인간 중심적 미메시스 개념에 구조적 변형을 가했다.
또한, 이상옥은 미메시스의 시간적 의미를 확장한다. 그는 “미메시스가 단지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태의 현실을 상상하게 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일맥상통한다.”(27-28쪽)고 말하며, 특정 작품 해석에서 “반복구 ‘날자꾸나’는 추억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적 지향을 드러낸다.”(27쪽)고 설명한다. 나아가 “시는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일’, 즉 보편적 진리를 드러내는 작업이다.”(29쪽)라고 서술한다. 이 진술은 『시학』 제9장에서 제시되는 ‘가능성’ 개념을 연상시키지만, 그 가능성은 서사적 보편성에 관한 것이지 미래적 실재의 제안은 아니다. 따라서 시간의 미래 지향적 확장은 원전 개념의 직접적 연장이 아닌 현대적 전유인 듯하지만, 개인적 전유에 가깝다.
이상옥은 이러한 논의를 종합하며 “디카시라는 장르는 바로 이런 이중의 미메시스를 가능하게 하는 형식이다.”(29쪽)라고 결론짓는다. 여기서 이중성은 질료와 형상, 사진 기호와 문자 기호, 감각과 사유, 현재와 가능태의 결합을 의미한다. 이러한 다층적 결합은 설명의 풍부함과 동시에 개념적 경계의 불명확성을 초래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미메시스의 핵심인 인간 행위의 예술적 모방과 감정 정화는 기술적·매체적 설명 속에서 상대적으로 흐려지고 만다.
결국, 『디카시와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 미메시스를 현대 디지털 환경 속에서 재사유하려는 적극적인 시도이다. 질료와 형상 개념과 미메시스의 직접적 결합, 기술 매체의 주체화, 시간 개념의 확장 등은 원전과의 철학적 정합성 문제를 야기한다. 이는 단순한 해석의 차이라기보다, 고전 개념을 현대적으로, 개인적으로 전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론적 느슨함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미메시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 위해서는, 원전 개념의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보다 엄밀한 철학적 설계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미메시스를 단순한 ‘현실 반영’으로 환원하는 해석의 문제를 지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는 행위와 구조, 가능성의 형식화이지 감각의 기록이 아니다. 디카시 담론은 이 형식적 차원을 제거한 채 사진적 재현을 미메시스로 동일시한다. 그 결과 미메시스는 시학과 거리가 먼 기록 미학으로 축소 전락한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특임교수
저서:평론집 10권, 이론서 4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