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큰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3000년 전 고대 그리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영화로 각색한 작품입니다. 원작에서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오디세우스가 개선 장군으로 고향에 돌아가는 여정을 노래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위대한 영웅의 귀환이 아니라 후회하며 본향을 찾아가는 한 인간의 고단한 여정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보는 자들은 감독이 호메로스적이라기보다 성경적으로 보인다고 미국 잡지 애틀랜틱은 평했고, 놀런 감독은 중국에서 오디세이를 기독교화한 의도였느냐는 질문까지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기자는 "출애굽기와 오디세이"라는 대조된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오디세우스와 병사들의 귀환 여정과 방황이, 히브리 민족이 모세의 영도 아래 출애굽 후 광야 여정과 약속의 땅을 향해 가는 것을 대비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국민, 2026. 6. 22).
한편 미국 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교수는 놀런의 오디세이와 재림 나팔에 관한 에세이를 써서, 오디세우스 활시위의 사냥 신호와 예수님의 귀환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활시위가 귀환을 알리는 소리라면 마지막 주님의 심판의 선포도 그렇게 울릴 것이라는 것입니다(국민, 2026. 6. 28).
또 어떤 신학 교수는 호메로스의 원전을 기독교화했다는 것을 반박하고, 기독교복음이 헬레니즘 문화권에서 나타난 것처럼 운명적으로 이해하여 굳이 기독교화했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그 영화는 오늘의 시대적 문화 문명의 현실인 AI 시대의 나침판 "제우스의 환대"를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국민, 2026. 6. 29). 우리는 구약 성경에 계시된 특정 인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혹은 특정 사건이 그리스도 복음적 계시로 봅니다. 그러나 세속사 속에서 나타난 인물이나 인간의 창작 속에 나타난 특정 인물이나 특정 사건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예시로 보고자 하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영감이 없는 인간적 사건이나 인물에 불과하고, 초월의 세계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계시에 비견하는 것은 불신앙인 것입니다.
어떤 인문학적 고전 속에서 그리스도 복음을 이해시키는 데 기여하는 작품이 분명하게 있습니다. 즉 인간의 타락한 죄악성, 하나님 떠난 삶의 무의미, 무서운 세상 신과 세상의 죄악과의 싸움 등은 때로 특정인을 예수 그리스도 복음 속으로 들어오게 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그 어떤 세상적인 것도 초월의 세계를 완전히 예표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문화와 문명은 그 속에 죄와 부패의 타락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천국의 소망만이 영원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증거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 피 흘려 죽으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이 복음으로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해답을 얻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의 피의 복음이 우리 마음에 깊이 뿌리내리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의 신성의 하나님 되심과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의 죽음의 피의 복음을 마음 중심에 믿고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은 영감 받은 성경의 계시와 계시의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 복음 외에는 진리로 구원받음을 믿지 않으며, 세상적인 것들을 초월의 세계와 대비해서 설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성경만이 유일한 진리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사도행전 16: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