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AI 정책이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다. 최고인민법원은 AI 관련 분쟁의 사법 판단 기준을 제시했고, 공업정보화부는 2026년 말까지 AI 애플리케이션 서비스업체 2,000곳 이상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AI 산업의 경쟁축이 모델 개발 속도만이 아니라 법적 책임과 현장 적용 능력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다.
중국 AI 산업을 바라볼 때 이제는 ‘얼마나 빠르게 모델을 개발하는가’만으로 시장을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9월 들어 중국 정부가 내놓은 두 정책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하나는 AI가 초래할 수 있는 위험에 법적 책임의 선을 긋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AI를 실제 산업 현장에 배치할 기업과 생태계를 늘리는 것이다.

최고인민법원이 9월 7일 발표한 「최고인민법원 인공지능 관련 분쟁 사건의 법에 따른 심리에 관한 의견」은 중국 최고 사법기관이 내놓은 첫 AI 관련 사법재판 규칙 문서다. 총 5개 부분, 24개 조항으로 구성됐으며 AI 침해 책임, 개인정보와 소비자 권익, 지식재산권, 자동운전, 모델 학습 데이터, 소송 절차 등을 다룬다.
주목할 부분은 기술 자체를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이 아니라 AI를 누가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기준으로 책임을 나누려는 접근이다. 법원이 제시한 원칙에는 사람 중심, 혁신 발전 지원, 안전선 구축이 함께 들어갔다. 법률이 별도로 무과실책임이나 과실추정책임을 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AI를 이용한 민사상 권리 침해에는 원칙적으로 과실책임을 적용한다는 기준도 제시됐다.
AI 얼굴·음성 합성은 더욱 구체적이다. 동의 없이 특정인의 얼굴이나 이름을 이용해 식별 가능한 가상 디지털 이미지를 만들어 사용·공개하거나, 본인의 음성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해 식별 가능한 합성 음성을 만드는 경우 권리 침해가 될 수 있다. 고인의 가상 디지털 이미지를 임의로 제작·사용해 고인의 이름·초상·명예 등을 침해한 경우에도 유족이 민사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했다.
‘AI 환각’과 같은 생성 결과의 책임 문제도 달라진다. 생성형 AI가 만든 내용이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 등을 침해하고 권리자가 삭제나 중단을 요구했는데 서비스 제공자가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이 문제될 수 있다. AI가 만든 결과물을 둘러싼 분쟁이 더 이상 ‘기술이 자동으로 생성한 결과’라는 이유만으로 기업의 책임 영역 밖에 머물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여기에 중국은 AI 산업의 다른 한쪽에서는 현장 적용을 담당할 사업자 육성에 힘을 싣고 있다.
공업정보화부가 8월 31일 공개한 ‘인공지능 애플리케이션 서비스업체 육성 특별행동’은 AI 서비스업체를 상담·기획, 구축·납품, 운영관리, 안전 거버넌스 등을 제공하는 기업이나 기관으로 정의했다. 중국 정부는 2026년 말까지 전국 서비스업체 자원 풀에 2,000곳 이상을 확보하고, 2027년 말까지 3,000곳 이상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정책의 방향도 분명하다. 서비스업체가 산업별로 모여 통합 솔루션을 만들고, 자주 사용하는 업무를 모듈화해 ‘작고 빠르고 가볍고 정확한’ AI 제품·서비스를 개발하도록 유도한다. 실제 현장을 담당할 전방 배치 엔지니어(FDE) 조직을 만들고, 사용자의 현장에 들어가 AI 적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이 대목에서 중국 AI 산업의 경쟁 방식이 바뀌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모델의 매개변수 규모나 벤치마크 성능이 중요한 경쟁이었다면, 다음 단계에서는 누가 기업의 업무 과정에 AI를 안정적으로 연결하고 운영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이미 중국은 AI 서비스를 관리하는 제도적 기반도 상당 부분 구축했다.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은 2026년 4월 30일 기준 중국에서 생성형 AI 서비스 868개가 당국의 행정 신고·등록 절차인 베이안(备案)을 완료했고, 기존 등록 모델을 API 등으로 호출하는 AI 애플리케이션·기능 530개가 등록을 마쳤다고 밝혔다.
AI 생성·합성 콘텐츠의 식별도 별도 제도로 관리되고 있다. 중국의 「인공지능 생성합성 콘텐츠 식별 방법」은 텍스트·이미지·음성·영상 등에 사용자가 인식할 수 있는 명시적 표시와 파일 메타데이터 등에 넣는 암묵적 표시를 구분한다. 이 규정은 2025년 9월 1일부터 시행됐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 시장을 바라보는 한국 AI 기업의 접근법에도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는 규제 준수를 제품 개발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처음부터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에서는 AI 모델이나 서비스의 성능만큼 데이터 사용, 생성물 식별, 개인정보, 소비자 권익, 지식재산권에 대한 대응 체계가 중요해지고 있다.
두 번째는 현지화의 의미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단순히 중국어를 지원하거나 현지 판매법인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육성하려는 서비스업체의 역할처럼 현지 산업의 업무 과정에 AI를 적용하고, 구축과 운영, 안전관리까지 책임지는 능력이 시장 경쟁력의 일부가 되고 있다.
세 번째는 중국 시장을 하나의 거대한 AI 모델 시장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의 최근 정책은 모델 자체보다 서비스 생태계, 산업 적용, 안전관리, 현장 납품 역량을 함께 키우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는 한국 기업이 중국에서 경쟁할 때 모델 성능만 강조하기보다 어떤 산업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현지 규칙에 맞춰 어떻게 운영할지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2026년 중국 AI 정책의 핵심은 ‘규제냐 혁신이냐’라는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다. 규칙을 정하면서 동시에 적용 능력을 키우는 것에 가깝다. 최고인민법원은 AI를 둘러싼 권리와 책임의 경계를 구체화하고 있다. 공업정보화부는 그 경계 안에서 AI가 실제 산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서비스 공급자를 늘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위험을 관리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활용을 확대하는 구조다.
한국 기업이 주목해야 할 지점도 여기에 있다. 중국 AI 시장의 다음 경쟁은 단순히 ‘더 좋은 모델’을 들고 들어가는 경쟁이 아니라 중국의 규칙을 이해하고, 현지 업무에 적용하며,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경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디지털 주권 시대의 중국 AI 전략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결국 두 가지다. 통제 가능한 혁신, 그리고 현장에 전달되는 AI다.
윤교원 대표 / The K Media & Commerce, kyoweon@naver.com
[이 기사의 저작권은 이비즈타임즈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