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가 사는 지역의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한 넓은 공원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실험적, 자발적인 무대의 공연을 한다. 그것은 전통적인 예술의 범주를 벗어나 기존의 형식과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무대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프린지(Fringe)가 의미하는 변두리나 주변부의 예술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누구나 자격의 제한 없이 작품을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다는 점도 프린지 문화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대표적인 예로 홍대와 연희동 일대에서 열리는‘서울프린지페스티벌’일 것이다.
이러한 프린지 문화(Fringe Culture)를 생각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방랑시인 김병연이다. 그의 과거와 이유를 불문하고 제도권의 틀을 거부하고 주변인으로서 시문학의 실험적 활동을 펼쳤다는 점에서 조선시대의 원조 프린지 예술인이 아닌가 싶다.
벌써 25년 전쯤, 시대와 화합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으며 당대 주류 사회를 예리하고, 때로는 희화(戱畵)하고 비판하면서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변방의 노마드적 삶을 살다 간 김병연(일명 김삿갓: 金笠), 그의 그 통쾌한 풍자 시를 만나러 갔다. 죽장에 삿갓을 쓰고 다니면서 구비육담시(口碑肉談詩)를 지으며 명산대천(名山大川)를 주유천하(周遊天下)했던 김병연이 죽어서도 그의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곳, 바로 영월의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이다.
예전엔 김삿갓을 부평초처럼 한 세상을 떠돌며 당 시대를 거부하고 방외 적 삶을 살다 간 풍자 시인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생애와 사상을 들춰보면 단순한 풍자 시인이 아니고 당시 민중 생활의 애환과 사회의 부조리를 타파해야 한다는 개혁 의지가 넘치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시를 통하여 당시 사회의 시대상을 새롭게 알 수 있었고, 또 이러한 역사적 부조리에 반항하는 한 인간의 고뇌를 읽을 수 있었기에 먼 길을 찾아갔다.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 그의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사대부 중심의 제도권을 벗어나 야인의 방랑자로서 주변인의 삶을 선택한 점과 당대 주류의 권력과 격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선택한 태도에서도 알 수 있다. 그의 무대는 전국의 산천이었고, 저잣거리와 주막 등이었다. 프린지 문화가 그러하듯 즉석에서 시 한 수로 그 시대의 메인 스트림인 사대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정형화된 한시의 작시법을 과감히 깨부수는 것은 유교적 규범을 탈피한 것이고, 특히 한자의 음과 뜻을 이용해 언어의 유희로 보이는 파자시(破字詩)나 한글의 음차나 비속어를 섞어 쓴 풍자 시 등은 프린지 예술가들이 선보이는 실험극이나 다원예술의 모습과 너무 닳아있다. 이러한 예술가 앞에 무슨 심사가 필요하고 자격을 논하겠는가, 오직 민중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삶을 시로 읊조리며 발 딛고 서 있는 곳에서 그들과 즉흥적으로 교감했을 뿐이다. 이러한 모습들을 지금의 문화로 재해석하면, 길거리의 즉흥적인 랩 배틀이나 스탠드 업 코미디를 선보이며 권위주의를 풍자하는 퍼포먼스와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시 ‘운우지정(雲雨之情)’이 생각났다.
위위불염경위위(爲爲不厭更爲爲)
불위불위경위위(不爲不爲更爲爲)
해도 해도 싫지 않아 다시 하고 또 하고
안 한다, 안 한다 하면서도 다시 하고 또 하고
남녀의 운우의 정은 아무리 해도 끝이 없고 아무리 해도 싫지 않다는 것을 절묘하게 비유하고 있다.
그의 인간관은 모든 사람에게는 上 · 下가 있을 수 없고, 大 · 小가 없다는 초자연적인 평등관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시어에 있어서도 개[狗] · 고양이[猫] · 물고기[魚] · 벼룩[蚤] · 개구리[蛙] 등 한시(漢詩)의 소재가 되지 못한 대상으로 지은 시들도 보이는데, 당시 문단의 사장파(詞章派)들은 이러한 그의 시를 파운농시(破韻弄詩)라 하여 치지도외(置之度外) 시 하기도 했다.
오늘날 인맥, 학맥, 지연 등의 그물망으로 얽힌 현대의 제도권 예술에 주변인으로 살았던 김삿갓은 의미 있는 성찰과 질문을 던지면서 ‘詩仙 蘭皐 金炳淵之墓(시선 난고 김병연지묘)’의 묘역에 땅보탬이 되어 누워있다.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지구의 유언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