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 바람 부는 가을이면 추풍낙엽을 보며 사람들은 가을을 탄다. 이는 단순히 기분 탓이라기보다 생체적인 호르몬 작용이라고 한다.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생기는 우울증을 감소시켜주는 이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세로토닌 분비도 적어지기 때문이란다. 흔히 가을을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실은 ‘계절성 우울증’을 앓는 이의 80% 이상이 여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계절적인 문제만이 아닌 것 같다. 서구식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기계적 디지털화로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나 사람들이 점차로 고립되어오지 않았는가.
2017년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를 결정하자 앞으로 영국은 고립되고 고독한 섬이 될 것이라고 유럽인들이 조롱 섞인 예측을 했지만 이미 영국 사회는 ‘고독’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2017년 발표된 ‘고독에 관한 조 콕스 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인 9백만 명 이상이 자주 아니면 늘 극심한 외로움을 겪고 있단다. 따라서 당시 메이 수상은 2018년 1월 17일 트레이시 크라우치 문화부 스포츠와 시민사회 담당 차관을 세계 첫 고독부장관으로 임명했다.
혼자면 외롭고 둘이면 그립다 했던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인생이지만 고향이 있기에 둘이고 둘이기에 그립지 않은가. 그래서 떨어져야 님이고 떠나와야 고향이 생기는 법이리라. 자, 이제 앞서 지구별에 다녀간 코스미안 칼릴 지브란이 그의 ‘예언자의 뜰’에서 하는 말 좀 우리 함께 들어보리라.
어느 하루 이른 아침에
제자들과 뜰을 거닐다가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알무스타파 말해 가로되
이슬방울에 비치는 햇빛
저 태양만 못하지 않듯이
우리 가슴속에 메아리치는
숨소리 삶 못지않으리.
이슬방울 햇빛 비춰 줌은
이슬이 햇빛인 때문이고
우리 모두 숨 쉬는 것은
우리가 그 숨인 까닭이리.
날이 저물고 밤이 되어
어둠이 주위로 깔리면
속으로 이렇게 말하리.
한밤의 진통 겪더라도
저 언덕바지 계곡처럼
우리도 어둠의 밤 밝힐
찬란한 새벽을 낳으리.
밤에 지는 백합 꽃잎 속에
몸 굴려 모으는 이슬방울
우주 대자연의 품속에서
혼과 넋을 찾아서 모으는
우리 자신과 다름없으리.
천 년에 한 번 나는 겨우
이슬방울일 뿐이라 하며
이슬이 크게 한숨짓거든.
그에게 이렇게 물어보리.
영원무궁한 세월의 빛
지금 네게서 빛나고 있는
이 기적 같은 신비로움을
너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하루는 큰바람이 일어나
모두 집안에 앉아 있는데
한 제자가 물어 말하기를
저는 홀몸인데 어쩌지요.
나이 먹는 게 두려워요.
알무스타파 말해 가로되
혼자임을 아직 몰랐었나.
우리는 모두 누구나가 다
이 세상에 혼자서 왔다가
혼자서 떠나가는 것임을.
자네 잔은 어떤 것이든
자네가 혼자 들어야지.
자네 몫 그 잔에 담긴
자네 삶 한껏 맛보게나.
쓴 것도 단 것도 모두
한 방울 남김없이 다
혼자 드는 잔이라네
자네 술잔에 담긴 것이
자네 피눈물 방울이래도
타는 목마름을 준 삶에게
송찬의 감사를 드리게나.
자네에게 갈증이 없다면
자네 가슴은 파도 없어
해조음 없는 바닷가처럼
황량하고 삭막할 뿐이리.
자네 잔을 기쁘게 높이
들어 혼자서 마시게나.
혼자 드는 사람들에게
축배를 들어 마시게나.
한때는 나도 다른 사람들과
잔칫상에 같이 둘러앉아서
마셔보았으나 그 술기운은
내 머리로도 가슴속으로도
전달되지 않고 발끝으로만
내려가 내 생각은 흩어지고
내 감정은 메말라버리더군.
그 후로는 더 이상 술친구 찾아
그들과 함께 술 마시지 않았네.
그대들에게 나 이르노니
기쁨의 잔도 슬픔의 잔도
저마다 각자 혼자 들게나.
우리 칼릴 지브란의 산문시 ‘눈물과 미소’를 깊이 음미해보자.
내 가슴속 슬픔을 나는 많은 사람들의 기쁨과 바꾸지 않으리.
그리고 슬픔에서 샘솟아 내 온몸 구석구석으로 흐르는
눈물을 즐거운 기쁨의 웃음으로 바꾸지 않으리.
다만 내 삶은 언제나 눈물인 동시에 미소이어라.
I would not exchange the sorrows of my heart
for the joys of the multitude.
And I would not have the tears that sadness makes
to flow from my every part turn into laughter.
I would that my life remain a tear and a smile.
내 가슴을 깨끗이 정화하고
삶의 숨겨진 비밀들을 알게 해줄 눈물,
나와 같은 신의 분신들에게 접근하고
나 또한 신의 화신이 되게 해줄 미소말이어라.
A tear to purify my heart and give me
understanding of life’s secrets and hidden things.
A smile to draw me nigh to the sons of my kind
and to be a symbol of my glorification of the gods.
상처 입은 가슴의 눈물과 하나가 될 눈물 한 방울;
존재의 기쁨을 나타내는 하나의 미소 말이어라.
A tear to unite me with those of broken heart;
a smile to be a sign of my joy in existence.
나는 무기력과 절망감으로 사느니
나는 사모하고 그리워하다 죽으리라.
I would rather that I died in yearning and
longing than that I lived weary and despairing.
내 가장 깊은 곳에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한
목마름과 굶주림이 있기를 갈망하리.
왜냐하면 부족함 없이 만족한 사람들이
가장 비참한 걸 나는 보았기 때문이지.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자의 탄식 소리가
이 세상 그 어떤 감미로운
멜로디보다 더 감미롭기 때문이지.
I want the hunger for love and beauty
to be in the depths of my spirit,
for I have seen those who are satisfied
the most wretched of people.
I have heard the sigh of those
in yearning and longing, and
it is sweeter than the sweetest melody.
저녁이 되면 꽃은 꽃잎들을 접고
그리움을 품고 잠들었다가,
아침이면 입술을 열고 해와 입맞춤 하지.
With evening’s coming the flower folds
her petals and sleeps, embracing her longing.
At morning’s approach she opens her lips
to meet the sun’s kiss.
꽃의 삶이란
그리움이자 결실.
눈물과 미소이지.
The life of a flower is
longing and fulfillment’
A tear and a smile.
바다의 물방울들은 물안개로 변해
하늘로 피어올라 구름이 되지.
The waters of the sea become vapor
and rise and come together and are a cloud.
그리고 구름은 언덕과 골짜기들 위로 떠돌다가
산들바람을 만나면 울면서 들로 떨어져
시냇물과 강물을 만나 고향 바다로 돌아가지.
And the cloud floats above the hills and valleys
until it meets the gentle breeze, then falls weeping
to the fields and joins with the brooks and rivers
to return to the sea, its home.
구름의 삶이란
이별과 만남,
눈물과 미소이지.
The life of clouds
is a parting and a meeting.
A tear and a smile.
그렇게 영혼도 더 큰 영혼으로부터
떨어져 물질세계에서 구름처럼
슬픔의 산골짜기와 기쁨의 들판 위로 떠돌다가
죽음의 산들바람을 타고 온 곳으로 돌아가리.
And so does the spirit become separated from
the greater spirit to move in the world of matter
and pass as a cloud over the mountain of sorrow
and the plains of joy to meet the breeze of death
and return whence it came.
우리의 바람이 꽃피는 바람꽃, 아니 우리의 꿈나무 열매가 우리의 아이들 아니랴. 셸리의 ‘서풍(西風)에 바치는 송시(頌詩)’에 대구법(對句法)으로 나는 ‘동풍(東風)에 바치는 송시(頌詩)’를 하나 읊어보리라.
코스모스 같은
아이들아
하늘하늘
하늘에 피는
코스모스 같은
아이들아
하늘하늘
하늘의 소리를
피리 불듯
바람처럼 불어다오
늙은 나무뿌리
썩는 것은
새나무 새순
돋게 하기 위한
것이리니
눈을 떠야 별을 보지
별을 봐야 꿈을 꾸지
꿈을 꿔야 님을 보지
임을 봐야 별을 따지
별을 따야 눈을 감지
눈 감아야 잠을 자지
잠을 자야 일어나지
일어나야 춤을 추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또 닳도록’
하늘하늘이 돌도록
땅 땅이 울리도록
어울렁더울렁
우리 사랑하는
가슴이 숨차게
뛰고 달리다가
쓰러져 줄어든
말 ‘사슴’ 아니
뛰노는 노루가
되어보리라
어울렁더울렁
하늘춤을 추듯
어울렁더울렁
파도춤을 추듯
어울렁더울렁
코스모스하늘
코스모스바다
푸른 하늘로
날아보리라
은하수 바다
노 저어 보리
내가 조숙했었던 것일까. 사춘기 때 벌써 사추기(思秋期)를 맞았었는지 그 당시 지어 불렀었던 가을 노래를 70여 년이 지나 이제 새삼스럽게 읊조려 본다. 돌이켜 보면 어쩜 사춘기 이후로 나는 언제나 가을을 타는 ‘가을살이’를 해왔는지도 모르겠다.
낙엽이 진다
타향살이 나그네 가슴 속에
낙엽이 진다
그리움에 사무쳐
시퍼렇게 멍든 내 가슴 속에
노랗게 빨갛게 물든 생각들이
으스스 소슬바람에 하염없이
우수수 흩날려 떨어지고 있다
왕자도 거지도 공주도 갈보도
내 부모형제와 그리운 벗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둘 모두
삶의 나무에서 숨지어 떨어지고 있다
머지않아 나도 이 세상천지에서
내 마지막 숨을 쉬고 거두겠지
그러기 전에 내 마음의 고향 찾아가
영원한 나의 님 품속에 안기리라.
엄마 품에 안겨 고이 잠드는 아기같이
꿈꾸던 잠에서 깨어날 때
꿈에서 깨어나듯
꿈꾸던 삶에서 깨어날 때
삶의 꿈에서도 깨어나
삶이 정말 또 하나의 꿈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아 알게 되겠지
그렇다면
살아 숨 쉬며
꿈꾸는 동안
새처럼 노래 불러
산천초목의
춤바람이라도
일으켜볼까
정녕 그렇다면
자나 깨나
꿈꾸는 동안
개구리처럼 울어
세상에 보기 싫고
더러운 것들 죄다
하늘의 눈물로
깨끗이 씻어볼까
정녕코 그렇다면
숨 쉬듯 꿈꾸며
도(道) 닦는 동안
달팽이처럼 한 치 두 치
하늘의 높이와 땅의 크기를
헤아려 재어볼까
아니면
소라처럼
삶이 출렁이는
바닷소리에
귀 기울여볼까
아니야
그도 저도 말고
차라리 벌처럼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 찾아다니며
사랑의 꿀을 모으리라
그러면서
꿀 같이 단꿈을
꾸어 보리라
우린 모두 코스미안 홀씨
소년은 코스모스가 좋았습니다.
이유도 없이 그저 좋았습니다.
소녀의 순정을 뜻하는 꽃인 줄 알게 되면서
청년은 코스모스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철이 들면서 나그네는 길을 떠났습니다.
카오스 같은 세상에서 코스모스를 찾아
그리움에 지쳐 쓰러진 노인은
무심히 뒤를 돌아보고 빙그레 웃었습니다.
걸어온 발자욱마다 무수히 피어난
코스모스를 발견했습니다.
다시 돌아보니 세상이
다 코스모스였습니다.
모든 꽃의 이름인 코스모스에서
코스미안 홀씨가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