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박동명] 지방의회 감투정치, 주민주권을 배반해서는 안 된다

▲박동명/한국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편집자주) 박동명 박사는 법학박사로서 지방의회와 주민자치, 주민참여예산 및 공공정책 분야를 연구해 왔다. 서울시의회 전문위원과 대학 외래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한국공공정책신문 발행인,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글은 일부 지방의회에서 반복되는 의장단 자리다툼과 당적 변경의 문제를 진단하고, 의장단 선출 절차의 투명성 강화와 정치적 책임 확립을 통해 주민주권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필자의 견해를 담고 있다.



지방의회는 주민의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살피고, 지방정부의 행정을 견제하며,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주민대표기관이다. 지방자치가 성숙하려면 지방의회부터 신뢰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일부 지방의회에서 의장과 부의장, 상임위원장 자리를 둘러싼 탈당과 세력 재편이 반복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정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된 의원이 의장단 선거를 앞두고 당을 떠나거나, 어제까지 경쟁하던 정당의 지원을 받아 주요 직책에 오르는 모습을 주민들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지방의원의 탈당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의원에게도 정치적 결사의 자유와 정치적 판단의 자유가 보장된다. 그러나 법적으로 가능한 행위라고 해서 언제나 정치적으로 정당한 것은 아니다.

 

유권자는 후보자의 개인적 역량만을 보고 투표하지 않는다. 정당의 정책, 가치, 공천 책임까지 종합해 선택한다. 당선 직후 의장직이나 상임위원장직을 얻기 위해 당적을 변경한다면, 이는 선거 당시 주민에게 제시했던 정치적 약속을 사실상 변경하는 행위가 된다. 주민의 표는 의원 개인에게 주어진 무제한의 권한이 아니라, 일정한 정책 방향과 책임을 전제로 한 공적 위임이다.

 

무기명투표가 밀실정치의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현행 지방의회 의장단 선거는 의원들의 무기명투표로 진행된다. 무기명투표는 외부 압력이나 정당의 과도한 통제를 줄이고 의원의 양심에 따른 판단을 보장하려는 제도이다. 그러나 소수의 의원으로 구성된 지방의회에서는 후보자의 자질과 의회 운영 비전보다 사전 표 계산과 직위 배분이 선거 결과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누가 누구를 지지하는 대가로 어떤 자리를 약속받았는지, 의장단 선거 과정에서 어떠한 정책적 합의가 있었는지 주민은 알기 어렵다. 투표는 비밀일 수 있지만, 선출 과정 전체까지 불투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후보자의 출마 선언, 의회 운영계획, 정견 발표, 공개 질의와 답변은 충분히 제도화할 수 있다.

 

의장단 선거가 주민 앞에 공개된 정책 경쟁이 아니라 의원들 사이의 자리 배분으로 운영된다면, 지방의회는 집행부를 감시할 도덕적 권위를 잃게 된다. 스스로의 권력 배분조차 투명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의회가 어떻게 지방정부의 불투명한 행정을 비판할 수 있겠는가.

 

지방의회의 불신은 주민자치의 위기로 이어진다

 

지방의회와 주민자치회는 형식과 기능이 다르지만, 모두 주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이다. 지방의회가 주민의 대표성을 바탕으로 조례와 예산을 심의한다면, 주민자치회는 생활 현장의 문제를 주민이 직접 논의하고 해결하는 참여의 장이다.

 

따라서 지방의회에 대한 불신은 의회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주민은 지방정치 전반에 냉소하게 되고, 주민총회와 주민참여예산, 마을계획 수립에도 참여할 이유를 잃는다. 아무리 주민들이 좋은 자치계획을 만들더라도 지방의회가 이를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거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처리한다면 주민참여는 형식적인 행사로 전락한다.

 

주민자치의 성패는 주민이 얼마나 자주 회의에 참석했는가가 아니라, 주민의 결정이 실제 조례와 예산, 행정에 얼마나 반영되었는가에 달려 있다. 이런 점에서 지방의회의 책임 있는 운영은 주민자치 활성화의 전제조건이다.

 

당적 강제보다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일부에서는 정당 공천으로 당선된 지방의원이 일정 기간 탈당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권자의 선택을 보호하자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당적 유지를 법률로 일률적으로 강제하거나 탈당을 의원직 상실과 연결하는 방안은 정치적 자유와 의원의 독립적 직무수행 원칙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보다 현실적인 해법은 탈당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탈당과 직위 취득 과정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첫째, 의장과 부의장, 상임위원장 후보자는 사전에 등록하고 의회 운영계획을 공개해야 한다. 집행부 견제 방안, 소수 의견 보호, 회의 공개, 주민 소통, 의원 윤리 강화에 관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의장단 선거와 관련한 회의 일정, 후보자 발언, 질의응답, 투표 절차와 결과를 체계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개별 의원의 투표 내용까지 밝히지 않더라도, 선거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은 주민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정당은 공천 단계부터 의장단 선거와 관련한 윤리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직위 획득을 목적으로 한 탈당과 복당, 상임위원장직 거래, 특정 예산의 부당한 약속 등이 확인될 경우 향후 공천 심사에 엄격히 반영해야 한다. 공천에는 권리뿐 아니라 책임도 뒤따라야 한다.

 

넷째, 지방의회 윤리특별위원회의 독립성과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 의장단 선거를 대가로 직위를 배분하거나 특정 사업과 예산을 거래했다면 단순한 정치적 협상의 문제가 아니라 공직윤리와 이해충돌의 문제로 다뤄야 한다.

 

주민소환보다 먼저 상시적인 주민통제가 작동해야 한다

 

주민소환제는 선출직 공직자의 정치적 책임을 주민이 직접 물을 수 있는 중요한 제도이다. 그러나 높은 청구 요건과 투표 성립 요건, 복잡한 절차로 인해 실제 활용에는 상당한 제약이 있다.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 논의는 필요하다.

 

다만 주민소환만으로 지방의회의 감투정치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주민소환은 임기 중 중대한 책임을 묻는 최후의 수단이다. 그 이전에 의정활동 공개, 표결정보 제공, 출석과 발언 기록 공개, 공약 이행 평가, 주민보고회와 같은 일상적 통제 장치가 작동해야 한다.

 

주민이 선거 때만 주권자가 되고 임기 중에는 방관자로 남는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지방의원 역시 선거에서 당선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임기 동안 포괄적 면책을 받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주민자치계획을 예산과 조례로 연결해야 한다

 

주민총회에서 채택한 자치계획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려면 주민자치회와 지방의회 사이에 정례적인 협의 구조가 필요하다. 주민자치회가 제안한 사업 가운데 예산이 필요한 사항은 주민참여예산 절차와 연계하고, 조례 제정이나 개정이 필요한 과제는 지방의회 상임위원회가 공식적으로 검토하도록 해야 한다.

 

반영된 사업뿐 아니라 반영되지 않은 사업의 사유도 주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법령상 제약이 있는지, 재정 부담이 과도한지, 기존 사업과 중복되는지,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이러한 설명책임이 보장될 때 주민은 결과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절차를 신뢰할 수 있다.

 

지방의원에 대한 주민자치와 주민참여예산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의원에게 필요한 것은 의장단 선거에서 몇 표를 확보할 것인가를 계산하는 기술이 아니다. 주민의 요구를 조례와 예산으로 전환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공익의 관점에서 조정하는 역량이다.

 

의장직은 명예가 아니라 책임이다

 

지방의회 의장은 개인의 정치적 경력을 장식하는 감투가 아니다. 의회를 대표하고, 회의를 공정하게 운영하며, 다수와 소수의 의견을 조정하고, 집행부에 대한 견제 기능을 실질적으로 작동시켜야 하는 책임의 자리이다.

 

의장이 되기 위해 당적을 바꾸고, 표를 모으기 위해 자리를 나누며, 선거가 끝난 뒤 다시 당으로 돌아가는 관행이 반복된다면 주민은 지방자치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법률 위반 여부만으로 이러한 행위를 평가해서도 안 된다. 지방정치에는 법적 책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정치적 책임과 윤리적 책임이 요구된다.

 

지방자치는 중앙정치의 축소판이 아니다. 주민의 삶과 가장 가까운 정치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투명하고 책임 있어야 한다. 의장단 선거를 공개적인 정책 경쟁으로 바꾸고, 탈당과 자리 거래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강화하며, 주민자치의 결정이 예산과 조례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방의회의 감투싸움을 끝내는 일은 단순히 의회 내부의 질서를 바로잡는 문제가 아니다. 주민의 표를 존중하고 주민주권을 회복하며, 흔들리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신뢰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박동명

▷법학박사

▷서울특별시 시민참여예산위원회 위원장
▷선진사회정책연구원 원장

▷(사)한국공공정책학회 부회장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

<저서> 「지방의회 운영실무」 (2026,공저) 등 다수




작성 2026.08.04 12:08 수정 2026.08.0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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