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의 노래, 그리고 1979년 명동의 어느 오후
Deep Purple의 ‘Soldier of Fortune’. 1974년 앨범 《Stormbringer》에 수록된 이 곡은, 하드록의 거센 파도 한가운데서 갑자기 조용히 흘러나오는 블루스 록 발라드다. 리치 블랙모어의 중세적인 코드와 데이비드 커버데일의 낮고 쓸쓸한 보컬이 맞물려, 마치 먼 길을 걸어온 사내가 모닥불 앞에서 홀로 중얼거리는 듯하다.
가사는 나는 늘 방랑자의 삶을 살았고, 언젠가 네 손을 잡고 노래를 불러주면 네가 “내 곁에 머물러 사랑해 줘”라고 말해 주기를 기다렸다고. 그러면 나는 분명히 머물렀을 것이라고. 그러나 나는 이미 늙어가고 있고, 내가 부르던 노래들은 멀리서 풍차 소리처럼 메아리칠 뿐이다. 결국 나는 언제나 용병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Soldier of Fortune’은 직역하면 ‘행운의 병사’이지만, 실제로는 돈과 기회를 따라 떠도는 용병을 뜻한다. 전쟁의 깃발을 따라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사내. 그러나 이 노래 속 용병은 총 대신 기타를, 전장 대신 무대와 거리를 떠돈다. 그는 정착을 꿈꿨지만, 결국 떠도는 운명을 받아들인다. 1974년의 서구는 베트남 전쟁이 막을 내리고, 사회 전체가 방향 상실을 앓던 시기였다. 밴드 내부에서도 블랙모어는 이 곡을 아꼈지만, 다른 멤버들은 처음엔 시큰둥했다. 그 거부감조차 이 노래의 외로움과 잘 어울렸다.
나는 이 노래를 1979년, 입대를 앞둔 어느 아침에 다시 만났다.
대학을 휴학하고 9월 입대를 준비하고 있던 스무 살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연상의 여인과 사귀고 있었다. 그녀와 나는 입대 날짜가 다가올수록 새벽부터 만나 시간을 아꼈다. 어느 날 아침, 허름한 해장국집에서 배를 채운 뒤 우리는 명동 백병원 맞은편 ‘로즈가든’이라는 작은 경양식 식당으로 향했다. 와인을 한 잔 하고 싶어서였다. 그곳에는 뮤직박스가 있었고, 젊은 여성 DJ가 음악을 틀고 있었다.
나는 신청곡을 하나 부탁했다. ‘Soldier of Fortune’.
곡이 흘러나오자 그녀는 술기운이 돌며 고개를 떨구고 울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DJ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와 “군대 가시나요?” 물었고,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옆자리를 권했고, DJ는 우리와 함께 앉았다. 우리는 그날 저녁 무렵까지 그 노래만 들었다. 다른 신청곡은 없었다. 로즈가든의 좁은 공간 안에서, 입대를 앞둔 남자와 그를 보내는 여자, 그리고 노래를 틀어 주던 한 젊은 여성이 같은 멜로디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아직 ‘용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저 군대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나를 데려갈 것이고, 그 몇 년 동안 그녀와의 관계는 어쩌면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만 있었다. 노래 속의 방랑자가 정착을 꿈꾸다 결국 떠도는 삶을 받아들이듯, 나도 곧 떠나는 사람이 될 예정이었다. 1970년대 후반의 한국은 아직 군사정권의 그늘이 짙었고, 젊은 남자에게 군대는 피할 수 없는 의무이자, 인생의 흐름을 강제로 끊는 큰 칼날이었다. 연애도, 학업도, 미래도 그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
세월이 흘러 나는 이제 육십대 후반이 되었다. 책을 쓰며 지난날을 정리하다 보면, 그 오후의 로즈가든이 유난히 선명하다. 와인 잔 위로 흘러나오던 목소리, 그녀 눈가의 눈물, DJ의 조심스러운 미소. 그 순간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용병’이었다. 나는 곧 군복을 입을 병사였고, 그녀는 사랑을 지키는 전선에 서 있던 사람이었으며, DJ는 낯선 이들에게 노래를 건네는 또 다른 방랑자였다.
‘Soldier of Fortune’이 여전히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이별 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떠도는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떠돌 수밖에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순간의 쓸쓸함과 담담함이 담겨 있다. “Guess I’ll always be a soldier of fortune.” 그 한 줄이 오늘의 나에게는 다르게 들린다. 젊을 때는 정착하지 못한 실패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삶의 본질에 가깝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용병이다. 사랑 앞에서도, 일터에서도, 나이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완벽한 정착은 없고, 다만 잠시 머무는 순간들이 있을 뿐이다.
그해 가을 나는 입대했다. 그녀와의 관계는 예상대로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실패가 나를 망가뜨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로즈가든에서 함께 들었던 그 노래가, 이후의 방황 속에서도 가끔 나를 붙들어 주었다. 군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 여러 자리를 전전하며, 또 다른 만남과 이별을 겪으면서도, “나는 언제나 용병일 수밖에 없다”는 문장이 이상하게도 위안이 되었다. 정착하지 못한 것을 자책하기보다, 떠돌면서도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창밖을 본다. 2026년의 서울 밤하늘은 1979년의 명동과는 전혀 다르다. 스마트폰으로 언제든 노래를 들을 수 있고, 군대도 예전과 같지 않으며, 사랑의 방식도 훨씬 가볍고 빠르다. 그러나 ‘늦기 전에 머물러 달라’는 마음은 여전히 같다.
나는 가끔 턴테이블에 《Stormbringer》를 올려놓는다. 바늘이 홈을 타기 시작하면, 명동의 그 오후가 다시 돌아온다. 울고 있던 그녀, 조심스럽게 다가온 DJ, 그리고 입대를 앞두고 와인 잔을 들던 젊은 나. 우리는 모두 그 순간만큼은 ‘soldier of fortune’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지금 이 나이의 나에게는 오히려 따뜻한 위로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