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배 칼럼] 문학의 영광, 과학의 침묵

이윤배

매년 10월이 되면 전 세계는 스웨덴 한림원의 발표를 숨죽이며 기다린다.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물리학, 화학, 문학, 평화, 경제학상까지, 인류에 이바지한 이들의 이름이 하나씩 호명된다. 그 순간만큼은 과학과 예술, 평화와 경제가 모두 하나의 무대 위에 선다.

 

노벨상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01년, 발명가 알프레트 노벨의 유언에서 비롯되었다. "지난해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상을 수여하라." 그 단호하고도 명확한 노벨의 뜻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국적도, 이념도, 종교도 따지지 않는다. 단지 살아 있는 ‘지금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무대에 설 자격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늘 그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라 구경꾼이었다. 그 무대에 대한민국의 이름이 오른 것은 지금까지 딱 두 번뿐이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화상을 받은 이후, 2024년에는 드디어 문학 부문에서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녀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한국 문학의 깊이와 가능성을 세계에 알렸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와 같은 작품은 인간의 고통과 기억, 그리고 치유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과학 분야는 여전히 불모지로 침묵 속에 있다. 일본은 이미 25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2025년 올해에도 노벨화학상과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중국과 대만, 그리고 파키스탄마저도 과학 분야에 수상자 이름을 올렸다. 반면 대한민국은 아직 단 한 명도 없다. 왜일까?

 

물론 그 이유는 무궁무진하게 많다. 기초과학에 대한 장기적 투자 부족, 연구 환경의 불안정성, 정권에 따라 흔들리는 과학 정책, 그리고 입시 중심의 교육 시스템이 복합적으로 얽히고설켜 있다. 일본은 1990년부터 ‘50-30 프로젝트’를 통해 50년간 3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목표로 삼고, 국민총생산의 2%를 연구개발에 투자해 왔다. 그리고 그중 40%를 기초과학 육성에 집중해왔다. 반면 대한민국은 연구개발비를 삭감하고, 수학·과학 교육은 정부 기관별로 엇박자를 내며, 장기적인 연구보다는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구조에 함몰돼 왔다.

 

교육 현장도 문제다. 단 한 번의 수학능력시험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시스템 속에서 창의성과 탐구심은 그림의 떡 신세가 되었다. 수학능력시험은 대학 입학의 자격이 아니라 인생의 당락을 가르는 시험으로 전락하였고, 과학 영재를 조기에 발굴하고 육성할 수 있는 체계는 턱없이 미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을 품는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문학이 그랬듯, 과학도 할 수 있다. 아니, 반드시 해내야 한다. 그러나 그 영광은 결코 우연 속에 이루어질 수 없다. 기초과학에 대한 국가적 비전 없이는, 수능 중심의 획일적 교육 체제 안에서는, 재능 있는 인재가 설 자리는 없다. 지금은 방향을 완전히 틀어야 할 때다. 제대로 된 투자, 유연한 제도, 과감한 실행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언젠가 10월의 어느 날, 노벨과학상 수상자 발표 현장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전 세계에 울려 퍼지기를…. 우리는 그날을 기약하며 단지 바라보는 외로운 관객이 아니라, 그 무대를 직접 만드는 설계자로 우뚝 서야 한다. 기다림이 아닌 준비, 침묵이 아닌 행동, 말이 아닌 증명으로 바로 지금, 우리가 그 미래를 위해 힘차게 시작할 시간이다.

 

 

[이윤배]

(현)조선대 컴퓨터공학과 명예교수

조선대학교 정보과학대학 학장

국무총리 청소년위원회 자문위원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 초청 교수

한국정보처리학회 부회장 

이메일 : ybl7736@naver.com

 

작성 2025.11.11 10:52 수정 2025.11.1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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